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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대사진) 60년전 아버지의 카투사 시절 옛날 흑백사진
    사진/추억 2016. 6. 6. 10:23

    나와 아버지가 닮은 점은 다른 사람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징병검사통지서를 받은 후 신체검사를 받고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아버지께서는 용산 후암동에서 카투사로 군대생활을 하셨다. 남산 밑에 있던 미군부대라고 한다.

    나도 징병검사통지서를 기다리지 않고 당시 대방동에 있던 해군본부에 가서 지원을 해서 해군에 입대해서 군생활을 하였다.

    다행히(?) 내 동생이 대한민국 육군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아버지의 멋진 모습

    현재 2016년 시점에서 보면 60년전의 카투사 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영문학과를 전공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외국인과의 여유 있는 프리토킹으로 영어공부의 동기를 주신 영어선생님도 있지만

    아버지의 카투사 근무 또한 관련이 있다.

    우리 형제들에게 공부에 대해서는 강요를 하지 않으셨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발음공부를 해야겠다고 조언을 해 주신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미군부대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그 한 가지는 미군들이 한국인 병사들을 매우 무시하였다고 한다. 부대에서는 폭력이 발생해도 그냥 두리뭉실 넘어간다고 한다.

    한국인 병사들은 체격이 작아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 아버지께서는 운동도 많이 하셨고 키가 180센티미터정도 되셨다. 옛날 분으로는 큰 키였다.

    미군들이 아버지는 건드리지 못하였고 아버지의 한국인 카투사동료들은 아버지의 덕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 부대에 당수(공수도) 3단의 한국인 병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어느날 미군들과 싸움이 붙은 자리에서 그 병사가 대단한 활약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거의 날아다녔다고 한다.

    그 싸움 이후로는 아버지께서 제대하실 때 까지 미군병사와 한국인병사 사이에 폭력사태는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진 뒷면에 이렇게 영어 주소와 이름을 새겼다.)

    힘이 장사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마라톤도 잘 하셨다.

    경기도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후보였는데 깡패가 찾아 와서 우승을 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옛날 운동경기는 모두 깡패들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하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하면 '그냥 받아버리고 싶었지만 가족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협박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대신, 결승지점까지 1등으로 쭉 달리다가 결승점을 바로 앞두고 마지막에 기권하셨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세우신 것이다.

    아마 1등한 선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쨌든 그 깡패 놈들에게 약속을 지켜줬다고 하신다. 많이 억울하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달리기를 그만두었다고 하신다.

       

     

     

     또 하나 기억이 나는 아버지의 군대생활 이야기는

    미군들에게 배울 점도 많이 있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일례로 미군들은 군기를 잡을 때 한국군인들 처럼 폭력이니 얼차려를 하지 않고

    대신 땅파기(구덩이파기)를 시켰다고 한다.

    미군들은 누가 보건 보지 않건 묵묵하게 끝까지 꾀를 부리지 않고 땅을 파는데 그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보였다고 한다.

    반대로 같은 상황에서 한국인 병사들은…… ㅠㅠ

       

       

     

    지금 이 건물이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 우리가족이 미군부대 앞을 지나가는데

    어머니께서 이 곳이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곳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곳이 바로 여기일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명필로 유명하셨다. 특히 붓글씨를 잘 쓰셨다.

    예전에 양평에서 호적정리를 할 때 마다 양평군청에 가시어 호적을 직접 손으로 쓰셨다고

    아버지 친구분들께서 귀다 닳도록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남아 있는 아버지의 글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 사진 뒷면에 이렇게 아버지 친필이 남아있어서 스캔을 하였다.

     

     

     

    중풍을 맞아서 오른손이 불편하게 되어 글을 잘 쓰지 못하게 되자 아예 글을 쓰지 않으셨다.

    절필을 하신 것이다.

    그 당시에 아버지께서는 당신께서 쓰신 글들을 다 없애버리신 것 같다.

       

     

     

     아버지의 붓글씨 쓰시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당시로서는 고학력이었으며

    한시 공부도 많이 하시어 한시에 능한 친구분들과의 교류도 하셨다.

    한학과 양학 모두를 공부하신 분이셨다.  

       

     

       

       

    주변 분들에 의하면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옛날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던 말이다. ^^

    50세가 지나면서 체중이 100Kg을 훌쩍 넘어섰다. ^^

     

     

     

    옛날 청량리 역 앞에서 아버지를 찾기는 정말 쉬웠다고 한다.

    청량리 역 시계탑에 서 계시면 큰 키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친구분들 말씀이 옛날 아버지와 친구분들 세대들은 키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옛날 사진들이 귀하지만

    이 흑백사진들은 내게 좀 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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